AX 전에 데이터부터 — 소규모 제조사 자가 점검

AX 세미나에 다녀온 생산관리 담당자가 회사로 돌아와 자리에 앉습니다. 발표장에서 본 “AI가 불량을 미리 예측하고 설비가 스스로 상태를 진단한다”는 장면은 분명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모니터를 켜고 보니, 우리 공정 데이터는 여전히 손으로 적어 넣는 엑셀 한 장이고 설계 도면 최종본은 공유 폴더 어딘가에 “최종_진짜최종_v3” 같은 이름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세미나에서 돌아와 수기 엑셀 공정 데이터를 마주한 생산관리 담당자
AX 세미나의 인상과 사무실의 현실 사이에는 데이터라는 간극이 있습니다.

“AI가 필요하다”는 인식과 “당장 우리 회사에서 AI를 쓸 수 있다”는 현실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간극이 있습니다. 세미나에서 본 사례들은 대부분 데이터가 이미 잘 쌓여 있는 회사의 이야기였고, 우리 회사는 그 데이터를 모으는 출발선에도 서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 좌절감은 담당자의 역량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AI를 돌릴 재료, 즉 디지털로 축적된 데이터라는 기반 자체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구조의 문제입니다. 문제를 사람에게서 찾으면 해법이 보이지 않지만, 인프라 단계에서 찾으면 지금 당장 손댈 곳이 보입니다.

세미나에서 들은 ‘AI 전환(AX)’이 우리 공장에선 왜 안 되는가

세미나 무대의 사례들이 공통으로 전제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설비 데이터든 품질 데이터든, 분석할 데이터가 이미 디지털로 쌓여 있다는 점입니다. AI는 그 데이터 위에서 비로소 예측하고 진단합니다. 반대로 데이터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솔루션도 빈 그릇 위에서 돌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공장에선 왜 안 되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기술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AI에 먹일 데이터가 아직 디지털로 모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그 출발선을 점검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먼저 AI가 데이터를 어떻게 쓰는지 짚고, 우리 위치를 숫자로 확인한 뒤, 회사 상태를 직접 점검하는 네 가지 기준과 그 결과에 따른 다음 행동까지 차례로 살펴봅니다.

AI가 작동하려면 학습할 데이터가 먼저 있어야 한다

AI가 무언가를 예측하거나 판단하려면, 그 판단의 근거가 될 데이터를 먼저 학습해야 합니다. 제조 현장이라면 설비가 언제 어떤 조건에서 돌았는지 기록한 공정 로그, 불량이 언제 왜 발생했는지 남긴 품질 데이터, 도면이 어떤 이유로 몇 번 바뀌었는지 보여 주는 설계 이력이 디지털 형태로 쌓여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많은 소규모 제조사가 이 데이터를 수기나 개인 엑셀로 관리한다는 점입니다. 종이 일지와 머릿속 경험은 사람에게는 훌륭한 자산이지만, AI에 입력할 수 있는 학습 데이터는 아닙니다. 결국 학습시킬 재료가 없는 상태에서 AI 도입부터 검토하게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데이터 부재는 기술을 다룰 줄 모른다는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기반을 아직 깔지 않았다는 인프라 단계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숫자로 확인하는 제조 AX 준비도 현황

현장의 체감은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연구원이 함께 조사한 자료를 보면, 2024년 기준 국내 제조업의 AI 활용률은 23.8%로 서비스업의 53%에 크게 못 미칩니다. 데이터를 모으고 다루기가 더 까다로운 제조업이 출발선에서부터 뒤처져 있다는 뜻입니다.

규모를 좁히면 격차는 더 뚜렷해집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025년 발표한 스마트제조혁신 3.0 전략에 따르면, 중소 제조기업의 AI 도입률은 약 1% 수준이며 정부는 2030년까지 이를 1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목표와 현실 사이의 거리가 곧 지금 소규모 제조사가 서 있는 자리입니다.

도입을 막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중소기업 현장에서 AI 도입을 가장 먼저 가로막는 것은 초기 비용 부담이고, 그다음이 데이터를 다룰 전문 인력의 부족입니다. 둘 다 결국 당장 큰돈과 사람을 들여야 한다는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정부가 짚은 진짜 병목은 조금 다른 곳에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제조 AX 확산을 가로막는 가장 큰 병목으로 현장 데이터의 단절과 활용의 한계를 공식적으로 지목했습니다(2025년 12월 기준). 비싼 솔루션이 없어서가 아니라, 솔루션에 넣을 데이터가 끊겨 있어서 AI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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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X 진입 전 지금 바로 확인하는 자가 점검 4가지

그렇다면 우리 회사는 어디쯤 와 있을까요. 고가의 진단 컨설팅 없이도, 다음 네 가지만 따져 보면 데이터 준비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첫째, 공정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있는가입니다. 생산 실적과 설비 상태를 수기나 개인 엑셀로 적는지, 아니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디지털 수집하는지, 그리고 그 기록이 얼마나 자주 쌓이는지를 확인합니다.

둘째, 설계 이력이 얼마나 디지털화되어 있는가입니다. 도면 버전을 공유 폴더 파일 이름으로 관리하는지, CAD 내부 기능이나 PDM(제품 데이터 관리) 체계로 관리하는지, 변경 이력을 나중에 추적할 수 있는지를 봅니다.

셋째, 데이터를 책임지는 담당자가 있는가입니다. 전담이든 겸임이든, 데이터를 모으고 정리하고 관리하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책임 소재가 비면 데이터는 쌓이다 만 채로 방치되기 쉽습니다.

넷째, 데이터 보안 정책이 있는가입니다. 누가 어떤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지, 백업은 얼마나 자주 하는지, 외부 유출을 막을 기준이 있는지를 점검합니다. 데이터가 자산이 되는 순간 보안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가 됩니다.

① 공정 데이터 수집 여부② 설계 이력 디지털화 수준③ 데이터 담당자 존재 여부④ 보안 정책 수립 여부

자가 점검 결과에 따른 ‘디지털 기반 다지기’ 의사결정 경로

네 항목 중 몇 개를 충족했는지에 따라 다음 행동이 달라집니다.

  • 0~1개 충족: 아직 AX를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 데이터를 모으는 인프라부터 세울 단계입니다. 수기로 적던 공정 일지 한 장을 디지털 수집으로 바꾸는 것이 첫 행동입니다. 거창한 시스템이 아니어도, 데이터가 일정한 형식으로 쌓이기 시작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출발입니다.
  • 2~3개 충족: 모은 데이터를 정제하고 표준화하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특히 설계 이력을 공유 폴더에서 PDM 체계로 옮기는 일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빨리 체감할 수 있는 경로입니다. 이 단계에서 데이터의 품질이 올라가야 이후 AI가 쓸 만한 재료가 됩니다.

정부의 스마트제조혁신 3.0 지원사업처럼 외부 지원을 활용하려 할 때도, 이 데이터 준비도가 사실상의 출발 기준이 됩니다. 지원을 받아 솔루션을 들여도 넣을 데이터가 없으면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인 순서도 미리 알아 두면 좋습니다. 데이터를 디지털로 쌓기 시작해 어느 정도 축적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AI 파일럿을 논의하는 일이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순서를 건너뛰면 비용만 앞서고 성과는 뒤따라오지 않습니다.

AX는 나중에, 데이터는 지금부터

  • AI가 작동하려면 학습할 데이터가 먼저 있어야 하며, 데이터 부재는 역량이 아니라 인프라 단계의 문제입니다.
  • 제조업의 AI 활용률과 중소 제조기업의 도입률은 목표와 현실의 간극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 진짜 병목은 비싼 솔루션의 부재가 아니라 현장 데이터의 단절입니다.
  • 공정 데이터 수집, 설계 이력 디지털화, 데이터 담당자, 보안 정책 네 가지가 준비도를 가늠하는 자가 점검 기준입니다.
  • 데이터가 충분히 쌓인 뒤에야 AI 파일럿 논의가 비로소 의미를 가집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한 걸음은 고가의 AI 솔루션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위 자가 점검 네 항목을 우리 회사에 직접 대입해 보는 것입니다. 수기 엑셀 한 장을 디지털 수집으로 바꾸는 작은 전환이, ‘지금 당장 AX’라는 구호보다 훨씬 빠르게 진짜 AX의 가속도를 만듭니다. 네 항목 중 가장 약한 곳부터, 이번 주에 하나만 점검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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