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 시뮬레이션 통합, 한국 프레스 산업의 선택

2026년 봄, 글로벌 성형 시뮬레이션을 선도하는 한 벤더가 서울을 찾았습니다. 개별 제품 출시가 아니라, 산업 전체가 ‘플랫폼 통합’으로 재편되는 거시 전환이 한국 프레스·금형 생태계로 향하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2026년 4월, 글로벌 성형 시뮬레이션 선도 벤더가 서울로 온 이유

글로벌 성형 시뮬레이션 산업의 지형은 2026년 들어 ‘플랫폼 통합’이라는 한 방향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흩어져 있던 양산 성형해석과 다목적 성형 시뮬레이션이 하나의 검증 인프라로 모이고, 그 위에 AI와 클라우드가 얹히는 흐름입니다. 결정권자가 먼저 읽어야 할 것은 개별 제품의 등장이 아니라 이 구조 전환의 방향입니다. 그리고 그 거시 신호는 2026년 봄, 서울에서 구체적인 사건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026년 4월 7일, 글로벌 성형 시뮬레이션 분야를 이끄는 AutoForm 그룹의 최고경영자 Olivier Leteurtre가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조영빈 한국대표가 동석한 이 자리에서 그는 한국 제조업을 향한 ‘지능형 상생’ 로드맵을 직접 발표했습니다. 전 세계 1,000개가 넘는 제조·공급 기업이 사용하는 선도 벤더가 한국 시장에 별도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앞선 산업 재편이 한국 프레스·금형 생태계로 향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디지털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품질 향상과 비용 구조 혁신을 이끌어낼 가장 강력한 전제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공정, 기술, 사람이라는 세 축을 동시에 끌고 가야 한다는 진단이었습니다.

자동차 부품을 찍어내는 프레스 금형 생산 현장
프레스와 금형은 자동차 제조의 첫 관문입니다.

이 메시지의 배경에는 자동차 산업의 구조 전환이 있습니다. 연간 260개가 넘는 신차 모델이 쏟아지는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차량 설계와 공정 검증의 속도가 곧 경쟁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한국의 프레스와 금형 산업은 이 재편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성형 시뮬레이션 산업 재편: 플랫폼 통합이 의미하는 것

앞서 짚은 플랫폼 통합은 먼 전망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산업 재편입니다. 대표적 장면이 2025년 10월에 있었습니다. AutoForm 그룹이 성형 시뮬레이션 기업 Stampack을 인수하면서, 양산 단계의 성형해석과 다목적 성형 시뮬레이션이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된 것입니다. 기술 용어로는 점진적 해석 방식(incremental solver)과 명시적 해석 방식(explicit solver), 솔리드 요소 기반 해석이 한 지붕 아래 모인 셈입니다.

실무적으로 보면 변화의 폭이 큽니다. 기존에 박판 프레스 중심이던 해석 영역이 두꺼운 판재와 항공·방산 부품까지 넓어졌습니다. 하나의 플랫폼이 다루는 산업 범위 자체가 확장되는 구조 변화입니다.

분리된 점형 솔루션Stampack 인수(2025년 10월)단일 통합 플랫폼AI·클라우드 수렴 가속

이 흐름은 한 기업의 사업 확장으로만 읽을 일이 아닙니다. 자동차, 항공, 전자 산업의 경량화 소재 수요(고장력강판, 알루미늄)를 배경으로 성형 시뮬레이션 시장은 견조하게 성장해 왔고, 선도 벤더들은 AI와 클라우드를 얹은 통합 플랫폼으로 빠르게 수렴하고 있습니다. 산업 분석가의 눈으로 보면, 이번 인수는 개별 거래가 아니라 성형 시뮬레이션 산업 전체가 플랫폼 통합이라는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하는 신호입니다.

시뮬레이션 기술의 미래: AI·디지털 트윈·클라우드가 바꾸는 공정 검증

기술의 무게중심은 ‘분석 후 참고’에서 ‘검증 인프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2026년 4월 서울 기자간담회에서 공개된 사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반나절에서 30분가량 걸리던 금형 어덴덤 설계 작업이 30초에서 1분 수준으로 단축된 것입니다. 숙련 기술자가 오랜 경험으로 다루던 작업을 AI 기반 공정 최적화가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소요 시간방식 특성기존 저품질 방식반나절숙련 기술자 의존기존 CAD 기반 방식약 30분CAD 도구 활용AI 기반 방식30초~1분AI 플랫폼 자동화

더 본질적인 변화는 데이터의 흐름에 있습니다. 조영빈 한국대표는 개인에 의존한 경험 전수 대신 문제와 해결을 데이터로 기록하고 AI로 최적의 접근법을 식별하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성형 공정 데이터가 설계, 공정, 품질로 이어지는 전체 사이클에서 추적 가능한 디지털 스레드로 묶이는 것입니다. 디지털 트윈은 그 위에서 실제 라인을 가상으로 먼저 검증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접근성의 문 또한 넓어지고 있습니다. 고급 성형해석 환경은 막대한 초기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의 전유물에 가까웠지만, 클라우드와 구독형 모델이 확산되면서 소규모 협력사에도 열리고 있습니다. 진입 장벽의 구조 자체가 바뀌는 셈입니다. 정리하면 시뮬레이션은 한 번 돌려보고 끝나는 도구에서, 설계부터 납품까지 루프 전반을 떠받치는 디지털 검증 인프라로 위상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경쟁 구도 재편: 점형 솔루션 잔류 위험과 전환 타이밍

결정권자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경쟁 구도를 어떻게 바꾸는가입니다. 자동차와 항공 공급망에서는 원청이 디지털 해석 데이터를 근거로 한 납품을 점점 더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공정 검증 데이터를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협력사는 입찰 단계에서부터 밀려나는 구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여기에 인력 문제가 겹칩니다. 숙련 기술자의 은퇴와 기술 전수 단절이 성형해석 역량의 공백과 맞물리면, 그 공백은 곧 수주 진입장벽으로 가시화됩니다. 이것은 특정 기업의 사정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문제로 읽어야 합니다.

전환 타이밍의 셈법도 달라집니다. 플랫폼 통합이 가속될수록 흩어진 점형(point) 솔루션 사이의 데이터 호환성과 전환 비용은 오히려 높아집니다. 어느 시점을 지나면 관망의 비용이 선제 대응의 비용을 넘어섭니다. 한국 금형 업계가 현시점(2026년 기준)을 ‘골든타임’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판단의 기준은 기술 도입 비용이 아니라, 수주 가능성과 역량의 지속성입니다.

한국 산업·정책의 변화: 결정권자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제도 신호

국내 현실은 더 절박합니다. 2023년과 2024년 두 해 사이에 전국 제조업체 약 8만 개가 사라졌습니다. 2023년에 48,952개(8.3%), 2024년에 32,852개(6.1%)가 줄었는데, 지난 10년을 통틀어 처음 나타난 이례적 현상이며 금형과 주형 같은 뿌리산업 업종의 감소가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18,232명뿌리산업 인력 부족 (2023)5년 새 7배약 8만 개제조업체 소멸 2년간490,843명기반공정 종사자 (2023)

인력 공백도 빠르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뿌리산업 6대 기반공정의 부족 인원은 2018년 2,568명에서 2023년 18,232명으로 5년 사이 7배 가까이 늘었고, 2023년 종사자 수는 490,843명으로 4년째 50만 명 선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새로 들어오는 속도를 한참 앞지른 것입니다.

제도는 이 공백을 메우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부는 뿌리기술을 기존 6대에서 14대 업종으로 확대하면서 엔지니어링 설계와 CAE 성형해석을 제도적 뿌리기술로 편입했습니다. 성형해석 역량을 갖춘 기업이 정부 지원사업의 수혜 대상에 들어온다는 정책 전환입니다.

자격과 인재 양성의 토대도 마련되고 있습니다. 2024년 12월 한국금형기술사회와 성형해석 전문 기업이 업무협약을 맺어, 국내 첫 CAE 기반 프레스 성형해석 정부인가 민간자격이 2026년 6월 첫 시험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한 국립대학에 성형해석 소프트웨어가 3년간 무상 제공되고, 공업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18개월 성형해석 교육이 운영되는 등 인재 투자도 선행되고 있습니다. 결정권자라면 이 제도 신호들을 채용과 역량 확보의 기회로 읽어야 합니다.

결정권자 전략 점검: 지금 물어야 할 네 가지 질문

기술 도입 여부를 따지기 전에, 경영 관점에서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아래 네 가지는 그대로 다음 경영 회의의 안건이 될 수 있습니다.

  • 우리 회사는 원청의 디지털 해석 데이터 납품 요구에 지금 대응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면 그것이 수주 진입장벽으로 굳어지는 시점은 언제인가.
  • 시니어 기술자가 은퇴하면 우리의 성형해석 역량은 단절되는가, 아니면 데이터와 플랫폼으로 재현 가능한 구조인가.
  • 뿌리산업 14대 확대와 민간자격 도입 같은 제도 신호를 채용과 인재 육성 계획에 반영하고 있는가.
  • 점형 솔루션에 머무는 비용과 통합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비용 중 어느 쪽의 기회비용이 더 큰가.

마지막 질문이 핵심입니다. 이 판단은 기술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수주 가능성과 역량 지속성의 문제로 재정의되어야 합니다. 글로벌 성형 시뮬레이션 산업은 이미 플랫폼 통합이라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한국 프레스 산업에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당신의 회사는 이 전환에 준비되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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